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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발레는 실제로 ‘고전’이 맞는가

장화 신은 고양이 2021. 12. 22. 17:32



방역 상황이 다시 심상찮게 흘러가는 걸 보니 솔직히 체념에 가까운 마음이 듭니다. 모르는 곳을 찾아가다가 길을 잘못 든 것 같아 방향을 돌리려는 그 무렵이 목적지 근처일 때가 많다지요. 바로 지금이 팬더믹의 종식을 앞둔 마지막 고비이기를 바라며 다소 무거운 마음이지만 오랜만에 글을 이어가보겠습니다.

독일 베를린발레단이 올 겨울에 호두까기인형을 공연하지 않기로 했다는 기사를 접했습니다. 2막의 캐릭터 댄스 중 중국인의 춤이 동양인을 비하하고 있다는 비판을 수용한 결과라고 합니다. 현지의 분위기는 시대의 변화에 따른 당연한 결정이라는 의견이 대세인 듯합니다.

학창시절에 친구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려면 최신곡을 부르던지, 옛날 노래를 부를 바엔 아예 진짜 오래 전 노래를 불러야지 어중간하게 유행 지난 지 몇 년 쯤 된 곡을 불렀다간 놀림거리가 되곤 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은 무엇이 고전인가에 대한 답을 찾는 데에 하나의 단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입니다. 우리가 호두까기인형, 백조의 호수 등을 발레의 고전이라 하는데 이 작품들의 연대는 19세기 말로 거슬러올라가니 이제 막 백 년을 넘긴 정도입니다. 이미 사진, 기차, 전기 같은 현대 문물이 존재하던 시기이지요. 소크라테스가 우리 시대로 타임리프한다면 적응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지만 ,19세기 인물인 차이코프스키는 그럭저럭 우리 시대에 맞춰 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고전발레가 만들어지던 시기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간대로부터 그리 먼 과거는 아닙니다. 그 시대의 작품들을 고전발레라 칭하고 있으나 200년도 되지 않는 시간은 고전이라는 이름의 화석이 되기에 충분한 것일까요. 19세기말 창작된 발레 레퍼토리는 현대작품이라 하기엔 너무 오래 되었고 고전이라 하기엔 시간의 시험을 완전히 통과하지 못한 어중간한 위상에 처해 있는 것 같습니다. 즉 현대인의 감성이 전폭적으로 수용할 수 있을만큼 편안하지도 않으면서 고전이라는 권위로 보호받기도 어려운 중간지대에 놓여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발레의 오래된 레퍼토리들은 후대의 취향과 도덕기준에 부합하도록 계속 재해석되어 왔고 최근 들어서는 정치적 올바름의 관점에 따라 많은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고전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교과서적인 답을 하자면 옛시대의 작품으로서 현대에도 감상할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하겠는데 옛 시대의 사람은 모두 무덤 속에 있으니 결국 현대를 사는 이가 칼자루를 쥐고 있습니다. 고전의 의미를 이런 맥락에서 재정의하면 현대와의 싸움에서 지지 않은 과거의 한 토막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어느 시대이든 예술가는 당대의 기준으로 자유롭고 도전적인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나 셰익스피어도 모차르트도 수백년 후에 지금 우리가 사는 이런 세상이 올 것이라고까지는 내다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현재의 눈으로 셰익스피어를 재단하자면 그조차도 신분차별주의자에 성차별주의자라는 혐의를 벗기 어렵겠지요. 그보다 더 과거의 시간을 살았던 베르길리우스, 소크라테스같은 이는 말할 것도 없고요.
그러나 그들의 작품이 시대착오적이므로 현대의 기준으로 개작하거나 폐기해야 한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첫머리에 최신 유행곡을 모르거든 차라리 아주 옛날 노래를 부르라고 한 것이 이런 이유입니다. 고전이 되기 위해선 후대인의 공격이 닿지 않도록 오랜 세월이라는 넓고 깊은 강이 과거와 현재 사이에 흐르고 있어야 합니다. 고전이란 누구나 가치를 인정하지만 누구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는 우스개같은 말이 사실인지도 모릅니다. 고대 비극을 관람한 후 객석에서 들려오는 박수소리가 뮤지컬이 끝난 후처럼 열광적이기보다 어쩐지 남의 눈치를 보듯 어색한 느낌인 것은 아마도 그런 이유일 것입니다. 쉽게 다가갈 수 없는 난해함이 작품의 권위를 낳고 그렇게 뜨거운 찬사, 차가운 비난 모두로부터 비껴 있는 역사의 화석이 되어갑니다.

발레를 보고 난 관객들의 감상평이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고 난 후 댓글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요즘은 발레단도 관객의 반응을 무시할 수 없는 시대라서 실제로 작품의 일부 장면을 수정하기도 합니다. 작품의 원본을 지키고 싶은 이가 보면 마땅찮은 일이겠고, 예술가에 맞서 관객의 권력을 만들어내고 싶은 이에겐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이것은 발레의 오래된 레퍼토리에 관습상 고전발레라는 이름을 부여하기는 하였으나 실상 그 작품들은 여전히 시대와 어울리거나 싸우면서 변해가는 도중인 것으로 고전이라는 역사의 화석이 되려면 아직 더 기다려야 하는 유동적인 지위에 있음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이삼백년 후에도 발레가 원본대로 무대에 올려질 수 있다면 그 때 쯤엔 고전이라 불러도 될 것입니다. 그 때엔 장면 하나하나를 놓고 불편하다느니, 시대착오적이니, 비논리적이니 하는 말들도 나오지 않을 것이고 작품이 끝나면 오직 진지한 박수만이 들리겠지요. 왜냐하면 먼 미래의 관객은 백조의 호수를 보고 자신이 무엇을 보았는지 길고 자세한 해설이 없으면 이해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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