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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발레단의 새로운 ‘돈키호테’

장화 신은 고양이 2023. 4. 16. 14:46

국립발레단 제195회 정기공연 ‘돈키호테’

23. 4. 12 수 ~ 23. 4. 16. 일
예술의전당
안무/ 마리우스 프티파, 재안무/ 송정빈

4월 12일부터 이어지고 있는 국립발레단의 돈키호테 공연이 이제 오늘 오후 2시 막공 한차례만 남겨두고 있다. 지난 5일간 공연을 본 많은 사람들에 의해 이 새로운 작품이 이미 적잖이 입소문을 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 말에서 짐작되다시피 금번 무대에 오르게 된 돈키호테는 지금까지 국립발레단을 포함 국내의 발레단이 선보여 온 것과 많은 부분에서 다르다.

안무가 송정빈씨에 따르면 새로운 개작에서는 기존작에서보다 돈키호테의 비중이 늘어났고 이야기의 개연성이 강화되었다고 한다. 작품의 소개는 국립발레단의 홈페이지에서 프로그램을 내려받아 확인할 수 있으므로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한다. 안무자의 의도가 달성되었는지 판단하는 것은 작품을 보는 관객의 몫일 것이다.

토요일에 작품을 본 관객으로서 간단히 몇 가지 언급해본다.
이번에 처음으로 국립발레단의 돈키호테를 접하는 관객이 있다면, 그가 보게 될 것은 기존의 관객이 기억하고 있는 돈키호테와는 상당히 다른 작품이다.
이번 공연을 위해 작곡된 서곡을 포함하여 새로운 음악들이 다수 사용되었다.
춤에도 적잖은 변화가 가해졌다.
익숙한 춤들 몇 가지는 새로운 안무로 대체되었다. 무용수에게 사고나 부상의 위험이 있어보이던 장면들을 새로이 안무했다. 2막의 결혼식 장면에서 이제 국내관객에게도 많이 친숙해진 탱고풍의 춤과 음악이 삽입되었다.
의상을 새로 디자인하고 무대도 밝고 입체적으로 다시 만들었다.
이 외에도 줄거리나 캐릭터에 변화가 가해졌다.
언급한 것들 하나하나는 작은 변화이지만 이것들이 보여 작품의 분위기 전체를 크게 바꾸었고 돈키호테라는 작품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선에서 바꿀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시도한 느낌이다.

무브먼트 시리즈와 새로운 안무가의 발굴

이번에 돈키호테를 재안무한 송정빈씨는 국립발레단의 안무가 발굴 프로젝트인 무브먼트 시리즈를 통해 안무가로 등장한 바 있다. 현대무용 내지 기타 자유로운 형식의 춤을 선보인 다른 참가자와 다르게 그는 고전발레 스타일의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처음에 받은 인상은 무언가 새로운 시대의 예술 흐름과 거리가 있다는 느낌이었다. 이미 확립된 클래식을 재생산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고전발레 해적의 재해석

그러나 송정빈 안무가가 지닌 개성은 국립발레단 강수진 단장의 유럽고전발레를 재해석하려는 방침과 만나면서 전기를 맞은 것 같다.  강수진 단장은 ‘해적’전막을 새롭게 다시 고쳐 무대에 올리는 데에 송정빈씨의 기여를 끌어냈다.
그리고 이번에는 해적보다 훨씬 대중성있는 ‘돈키호테’의 개작버전을 선보이게 되었는 바, 클래식의 재해석 시도가 스쳐가는 단발성 시도를 넘어 국립발레단의 에술방향으로 자리잡아가는 것 아닌가 짐작하게 된다.

비슷한 듯 다른 두 발레단의 길

무대에 올릴 레퍼토리가 제한적인 것이 발레라는 예술장르의 한계라면 국내의 대표적인 두 발레단 유니버설발레단과 국립발레단은 이에 각기 다른 방식으로 대처해왔다고 생각된다.
유니버설발레단은 심청, 춘향같은 한국적 소재를 발레로 만드는 데 주력했고 일정 부분 성공했다.
국립발레단은 비교적 최근에야 무브먼트시리즈를 통해 새로운 안무가와 신작을 발굴해왔고 강효형씨의 ‘요동치다’같은 작품이 해외에서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무브먼트시리즈를 통해 발굴된 또다른 안무가인 송정빈씨가 ‘해적’ ‘돈키호테’를 연이어 재해석한 작품을 올리면서 국리발레단은 의도하였든 아니든 새로운 길에 접어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발레의 원본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지던 유럽의 아성에 도전하는 길.

로컬이냐 글로벌이냐의 갈림길

지난 3월에 파리오페라발레가 지젤 내한공연을 하였을 때 많은 이들이 역시 파리오페라발레는 다르다고 찬탄했다. 결국 발레의 오리지널리티는 우리가 아니라 그들에게 있다는 의식이다. 그렇게 문화의 원본성, 소유권이라는 게 있다면 한국에서 발레를 한다는 것은 영원히 남의 것을 불완전하게 모방하는 것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일각에서 한국에 왜 국립발레단이 있어야 하느냐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도 그런 것이다. 남의 문화를 흉내내는 처지이면서 국립예술단체로 존재하는 것은 문화사대주의라는 주장.

그런에 이번에 국립발레단이 돈키호테를 개작한 것을 보며 다른 생각이 든다. 발레는 분명 유럽으로부터 수입된 외래문화이지만 이제 우리에 의해 소화되어 로컬화되고 있는 것 아닐까 하는.
더 나아가 그 로컬 버전이 완벽하게 다듬어져 한국 밖에서도 받아들여진다면 지금은 예술의전당에서만 볼 수 있는 해적과 돈키호테의 국립발레단 버전이 글로벌 버전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문화는 단기적으로는 원산지를 주장할 수 있지만 길게 보면 사람이 오가는 과정을 통해 모두 뒤섞이는 것이다. 문화의 소유권을 일신에 귀속시키는 법적 효력은 역시적 시야에서는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다. 저작권에 매일 필요 없는 고전은 동서양의 구분을 떠나 인류의 자산이므로 수용하고 소화할 의지가 있는 자 모두의 것이라고 보아도 될 것이다.

국립발레단은 유럽의 예술을 최대한 가깝게 재연하던 단게를 지나 인류의 자산을 한국문화로 가져오는 단계로 이행하고 있는 듯.

그런 점에서 4월 12일부터 시직한 지난 5차례의 공연 그리고 앞으로 3시간 뒤에 끝날 마지막 공연에 함께하는 이들은 사소하지만 중요한 의미를 가진 순간에 동참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페라극장에 걸린 공연현수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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