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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발레 지젤 : 지젤은 누구일까?

장화 신은 고양이 2021. 11. 12. 22:18



11월을 맞기 직전, 가을비가 내리던 토요일 밤, 기나긴 코로나 시대에 조용히 마침표를 찍듯 오랫동안 보지 못하던 발레 지젤이 예술의전당 무대에 올라왔습니다. 4층까지 빽빽하게 채운 관객의 열기는 얼마나 오랜만에 보는 것이었는지 저도 모르게 사방을 천천히 둘러보게 되더군요. 장소가 생명을 가지는 것은 그곳을 찾는 사람이 있기 때문임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마침 그 무렵은 할로윈이기도 했는데 처녀 귀신들의 아름다운 군무로 유명한 지젤을 무대에 올린 것은 우연인 듯 절묘한 작품 선정이었습니다. 할로윈이야 서양에서 유래한 관습으로 생소하달 수도 있으나 죽은 자의 혼이 산 자와 함께 한다는 믿음 자체는 동서양을 가릴 것 없이 존재합니다. 우리에겐 추석이란 명절이 있어 가을걷이를 끝낸 후 수확물을 가지고 조상신들에게 제사지내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유럽에서도 추수가 모두 끝난 시월 말에 죽은 자들의 영혼이 내려와 산 사람 사이를 돌아다닌다고 믿었고 귀신들에게 사람임을 들키지 않으려고 똑같이 귀신처럼 꾸미는 날이 할로윈이지요. 곡물을 거두어 먹을 것이 넉넉한 때에 귀신이 이승으로 찾아오는 것은 동서양이 비슷하네요. 그런데 한국의 조상신은 죽어서도 가족의 일원이었기에 가족이 해체되는 현대에 와서는 굳이 섬길 이유가 없는 천덕꾸러기가 되고 있습니다. 반세기가 지나기 전에 한국에서는 부와 권력을 후대로 전할 수 있는 몇몇 가문을 제외하면 조상신이란 존재가 사라질 것입니다. 반면 할로윈의 유령은 그 누구와도 인연 없는 스쳐가는 존재라서 오히려 환영받게 되었습니다. 개인주의적 도시문화에서는 부담스럽지 않은 것이 제일입니다.

자 그러면 귀신이 산 사람 곁에 찾아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식들 사는 게 보고 싶어서, 살았을 적 먹었던 음식맛이 그리워서 등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한 마디로 이승에 미련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누군가에게 복수하고 싶은 마음은 가장 강렬한 동기입니다. 비록 그 복수심 때문에 악귀가 되어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구천을 떠돌게 되더라도 말입니다. ‘지젤’ 2막에 등장하는 처녀귀신 윌리들은 남자에게 배신당하여 죽은 여인들의 영혼으로 매일 밤 숲에 나타난 남자들을 붙잡아 저승으로 보냄으로써 남자에게 복수합니다. 우리의 주인공 지젤 역시 사랑하는 남자에게 상처입고 죽음을 맞았지만 지젤은 윌리들과 달리 자기에게 아픔을 준 알브레히트에게 복수하지 않고 끝까지 보호합니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발레 지젤을 숭고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그린 작품이라고 일컬어 왔습니다.

이번에 지젤을 공연한 유니버설발레단은 막이 오르기 전 예술감독이 간략하게 작품 해설을 하는 순서를 마련하고 있는데, 이 날 해설은 작품의 결말에 대해 제가 아직 모르고 있던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지젤은 자신에게 고통을 안긴 알브레히트를 죽이지 않고 끝까지 지켜주었기에 다른 여인들처럼 밤마다 묘지에 나타나는 귀신이 되지 않고 무덤으로 돌아가 편안히 쉴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일본의 유명한 추리소설가 미야키 미유베의 “영혼통행증”에서도 귀신이 자신에게 해를 가한 인간에게 직접 복수하면 악귀가 되어 이승을 떠돌게 된다는 대목이 있다네요. 발레 지젤이 아름다운 사랑을 그린 낭만발레의 걸작으로 오래 전해질 수 있었던 것은 훌륭한 안무, 아름다운 음악 덕분이기도 하지만 ‘용서’라는 주제를 담고 있기 때문이었다고도 보여집니다.

그러나 이 ‘용서’라는 주제가 오늘날 관객에게는 불편하게 와닿기도 합니다. 배신한  남자를 여자가 용서하는 것을 숭고한 사랑으로 억지포장한다는 것이지요. 170년이 넘은 작품의 미의식이 현대인의 감각과 충돌하는 일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면 ‘불편한’ 장면을 삭제하거나 결말을 바꾸면 될까요? 만족스러운 개작이 어렵다면 시대착오적 요소를 담은 불편한 작품은 무대에 올리지 않는 것도 방도가 될 수 있겠습니다. 제가 ‘지젤’을 처음 접한 지 10여년이 됩니다만 예술적 완성도와는 별개로 저 역시 스토리 속의 과장이나 비논리성을 느낀 적이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춤과 음악이 워낙 아름다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던 것이지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10년간 지젤을 본 횟수는 적어도 10번은 넘을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떠오른 작품에 대한 의문들과 저 나름의 답을 앞으로 풀어내볼 생각입니다. 그러나 지젤이란 작품의 미의식이 현대성과 마찰을 빚는 부분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에 직접적인 의견을 내놓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제 능력을 벗어나는 일입니다. 대신 작품에 대해 하나하나 살펴보는 과정에서 ‘지젤’을 어떤 시각으로 보아야 할지 천천히 생각해보려 합니다.

발레의 레퍼토리는 다른 예술 장르에 비해 상당히 빈약합니다. 모차르트, 하이든같은 사람이 수백여 곡을 남겼고, 화가 한 명이 창고 한 채를 채울 만큼의 작품을 남기기도 하는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지요. 영상매체가 없던 시대에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해지던 무용의 특성상 수많은 작품이 소실되었을 것입니다. 살아남은 작품들도 새 시대의 이념과 도덕, 취향 속에서 만만찮은 도전을 이겨내야 합니다. 음악같은 추상성 강한 예술은 시간의 시험을 비교적 쉽게 이겨냅니다. 바흐나 모차르트가 수백년 전 사람이라 하여도 그들의 음악 속에서 봉건주의의 흔적을 찾아내려는 것은 억지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발레, 특히 19세기의 낭만발레와 고전발레는 옛 이야기에서 차용한 구체적인 스토리와 주제, 그리고 당대의 의상과 생활이 춤에 녹아 있습니다. 그런 구체성 덕에 발레가 대중이 대하기 쉽고 편안한 장르가 되었지만 동시에 시대가 변하면 구시대의 유물로 비쳐져 비판과 공격에 취약해집니다.

발레를 후원하던 러시아 제정의 몰락과 소련의 등장은 자칫 러시아에서 발레라는 예술에 마침표를 찍을 수도 있었던 사건입니다. 궁전을 배경으로 왕자와 공주, 시종이 등장하는 고전발레가 공산주의 이념과 양립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고전발레는 소련시대에도 살아남았습니다. 백조의 호수 무대에 낫과 도끼를 걸고 작업복 입은 발레리나가 군무를 추게 했다면 러시아 발레는 그대로 끝장났겠지요. 제정시대의 분위기 가득한 황실발레가 볼셰비키의 눈에 불편했을 법도 한데,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 속의 미녀, 호두까기인형 모두 그대로 보존되었습니다. 외견상 과거의 유물에 불과한 오래된 레퍼토리가 현대에도 여전히 무대에 오르는 것에는 작품이 지니는 어떤 생명력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훨씬 깊은 역사와 탄탄한 레퍼토리를 보유한 타 예술 분야와 달리 상대적으로 짧은 이력, 부족한 작품의 양이라는 취약성을 가진 발레가 오래 살아남으려면 날카로운 비판 못지 않게 깊은 이해와 수용의 마음도 필요할 것입니다.

서론이 생각보다 길어졌군요. 다음 편부터는 낭만발레 지젤을 처음 본 이후 제가 지녔던 의문들의 답을 하나씩 찾아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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