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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한 달 간 손에서 놓고 있던 이 주제를 이번 꼭지로 마무리할 생각이다.

한국의 근대적인 공연 시설은 당연하게도 서구에서 유입된 문화이고, 서구의 대규모 공연장이란 절대왕권의 위용을 보여주는 시설이었거나 시민 혁명 이후 부르주아 계층의 여유와 교양을 과시하는 장소였다는 점을 앞서 언급했다.

유럽 역사의 흐름에서 시민 혁명을 주요 분기점으로 꼽곤 하는데 그들의 혁명에는 어떤 이중성이 목격된다. 시민이 역사의 주역이 되기 위해 앞 시대의 지배자였던 왕과 귀족의 정치, 경제, 군사적 기득권은 철저히 해체한 반면, 귀족문화는 전리품으로 취득하여 부르주아 계층 자신들의 문화적 상징으로 삼은 것이다.
루이 16세와 앙투아네트 앞에서 연주하던 모차르트의 음악을 더 많은 시민들이 듣게 되고, 궁정에서 다듬어진 어용 예술이었던 발레가 새 시대의 입맛에 맞춘 레퍼토리를 가지고 재등장한다.

수적으로 확대된 부르주아 시민의 문화 수요를 채워주기 위한 일종의 문화 소비 공간 내지 문화 공장으로서 대규모 공연장이 등장하는데 이 공연장이라는 곳에서 왕정 시대를 끝내고 주도권을 잡은 새로운 지배집단이 문화적으로 자신들을 규정하고 노동자, 농민과 자신들을 차별화할 지점을 모색한다.

부르주아의 문화 취향은 그들이 타도한 왕실, 귀족의 그것과 유사하였고 그들이 다듬어간 매너와 관례도 귀족 문화를 모델로 하였다. 결국 19세기의 부르주아란 숫자가 늘어났을 뿐인 스스로를 귀족이라 부르지 않는 귀족이었다 봄이 적당하겠다. 그 사실은 거듭된 혁명에도 불구 당대의 투표권을 가진 시민(이라 쓰고 일정 수준의 경제력과 사회적 배경을 지닌 상위 2-3퍼센트의 남성이라 읽는다)이 전체 인구 중 극소수였다는 점에서 짐작할 수 있다.

요약하면 클래식 예술이란 혁명을 통해 정치 권력을 장악한 계층이 이전 시대로부터 전리품처럼 취하여 자신들의 문화적 상징으로 삼은 악세사리였다는 것이다. 그 문화적 헤게모니를 물리적으로 구현하는 구체적 장소들이 대규모 공연장이었으므로 그곳은 부르주아들의 우월한 교양을 과시하고 타 인구집단과 자신들을 취향을 구실로 구별짓는 배타적인 공간이었다.

2013년에 나온 스웨덴 영화 ‘퓨어’를 보면 고상한 예술을 누리는 세계와 주인공 카타리나가 속해 있는 햄버거를 먹고 청바지를 입고 팝을 듣는 세계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느낄 수 있다. 이질적인 그 두 세계가 만날 때 형성되는 긴장과 파열음이 영화의 분위기를 이끈다.

유럽 세계의 표면상 민주적이고 평등한 외면 아래 존재하는 계층 사이의 분절은 고급문화라 규정한 영역에 누구나 자유롭게 들어서는 데에 유무형의 장벽을 두게 된다. 교육을 통해 습득되어야 하는 교양과 예의, 배경지식 등이 무형의 장벽으로, 계층과 경제수준에 따라 달라지는 옷차림 따위가 유형의 장벽으로 기능하며 눈에 직접 드러나는 외모, 복장은 직접 가늠할 수 없는 무형의 정신적 자산을 어떤 이가 보유하였는지 여부를 타인이 손쉽게 판단하는 지표가 되곤 한다.

서구 세계의 클래식 그리고 그로부터 파생하거나 그것을 포함하는 고급문화라 여겨지는 영역의 존재는 그들 유럽인이 과거의 전통을 순조롭게 계승하고 있다는 증거인 동시에, 역사적 과정을 통해 그들 내부의 계층적, 문화적 분절 상태를 완전히 해소하지 못하였거나 혹은 그럴 의도가 없는 채로 오늘에 이르렀다는 것을 암시한다.

서양의 공연장 문화에는 이처럼 그들의 역사적 경험이 부호처럼 곳곳에 숨어 있다. 방문객을 심리적으로 제압하는 웅장하고 화려한 건축, 비대중적인 레퍼토리, 이곳에서 통용되는 특별한 매너와 화술 등은 방문자가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일종의 테스트를 치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채점기준은 보수적이고 배타적이며 이것은 일정한 이들을 배제하여 집단의 동질성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적어도 시민혁명을 치른 유럽에서 드러내놓고 넌 여기 오면 안 돼 라고 금지하지는 않더라도 우아하게 사람을 밀어내는 숨겨진 장치를 겹겹이 갖추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유럽의 시민혁명으로 진전된 민주주의란 제한적이었고 구호와 현실 사이의 시차를 틈타 구 귀족 문화가 새 지배계층에게 흡수되었고 그들의 생활의 일단을 엿볼 수 있는 장소 중 하나가 공연장이었다는 것이다.

만약 보이지 않는 불문률을 어기고 너무 깊이 다가가면 영화 퓨어의 주인공 카타리나처럼 “넌 식은 피자나 먹어라”같은 소리를 듣게 된다.


이제 한국

한국에 일찌감치 존재한 국립극장, 세종문화회관 같은 시설은 서구 문화의 하드웨어를 복제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고 건물을 비슷하게 지었다고 그들의 역사적 맥락과 관습까지 딸려 오는 것은 아니다. 유럽의 건물을 복제하여도 그것이 놓인 맥락이 한국적이면 그곳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한국적일 수밖에 없다.

해방후 한국에는 몇 가지 중요한 역사적 진전이 있었다고 보는데
첫째, 토지개혁과 양반지주의 소멸
둘째, 한국전쟁 기간 중 혼란과 파괴 속에서 전통 사회 질서가 소멸한 것
셋째, 앞서 두 사건으로 인한 전후 문화적 공백 상태

양반지주의 소멸은 수백년 봉건 굴레의 소멸이면서 동시에 한국 엘리트 문화의 쇠퇴를 의미했다. 농업생산력이 뒷받침하는 경제적 여유 속에서 꽃피운 시조,창, 전통기악 등이 그것을 즐기던 계층의 소멸과 더불어 몰락한것이다.

이는 유럽의 사정과 크게 대비된다. 유럽에서는 왕실과 귀족이 몰락한 후에도 그들의 문화가 부르주아에게 계승되었고, 심지어 프롤리타리아 독재를 표방한 소련에서조차 제정시대 예술이 살아남았지만 한국의 전통문화는 이와 달리 한번 자리에서 밀려난 후 주류로 되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봉건기득권이 사라진 자리는 새로 형성된 현대 한국의 상류층이 대신한다. 그들은 정부의 고도성장정책에 편승한 기업가이거나 자산가 또는 고등교육을 받은 화이트칼라, 지식인 등 여러 범주로 나누어진다. 과거 전근대시대에 양반엘리트는 유교적 소양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었으나 현대에 등장한 이 새로운 계층을 하나로 묶을 공통분모는 명확하지 않았다.

1970~80년대 이후, 서울을 중심으로 세종문화회관, 국립극장, 예술의 전당 등 공연전문 대형 시설이 건립되고 앞서 언급한 현대 한국의 상류층 내지 중상류층이 이 공간에 드나들기 시작했다. 한국전통문화가 한국인의 정신세계에서 퇴장한 후 한국엘리트는 서구의 고전문화를 자신들의 정신문화를 정의할 대체제로 선택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이들은 사회에서 차지한 계층적 위치, 그들이 점유한 부와 영향력의 크기 등 서구 상층 시민과의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면에서 과거 유럽의 부르주아와 근본적 차이가 있다.

먼저 반세기도 안 되는 단기간에 급조된 계층으로 서구 상류 시민과 달리 역사적 무게가 없다.
그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공통된 문화적 자산이 부재한다.
국민들 앞에서 도덕, 교양의 표준을 제시할 권위가 없다.

국민 다수 평균에 대비하여 더 많은 재산, 더 나은 학벌, 지위를 지니고 있다 한들 현대의 한국인은 너나 없이 문화적 뿌리를 잃은 정신적 미아라는 점에서 다같이 공평한 처지였기에 현대한국의 엘리트가 이룬 성취는 존경을 이끌어내기보다 나도 저 사람들처럼 될 수 있다는 극단적 평등주의를 강화했다.

다시 말하면 한국의 상류시민은 서구의 부르주아와 다르고 한국의 일반대중은 유럽의 농민, 노동자와 동일하지 않았다. 유럽은 수백년 역사 속에 계층의 분화가 이루어져 이것이 사람들 사이의 눈에 보이지 않는 칸막이가 되고 이것은 어떤 교육을 받고 어떤 문화를 향유할 지 인생 전반을 규율하고 있는 것이다. 겉으로 표방하는 민주주의 아래 깊은 곳에서는 봉건주의가 기저에 흐르고 있다. 시민혁명은 뾰족한 고딕 양식 첨탑같은 계층 피라미드의 경사도를 다소 완만하게 하였을 뿐이다. 반면 한국의 계급 피라미드는 굴곡진 현대사를 거치며 무너져 버렸고 새로운 계급은 기존의 계급만큼 아직 단단해지지 않았다.

이제 애초 이 글의 출발점이었던 공연장으로 돌아가본다.
내게 낯선 문화 영역에 들어서려면 그 전에 몇 가지를 확인하게 된다. 먼저 나의 사회적 소속, 그 다음은 사전 지식 내지 교양의 습득 여부 마지막으로 남에게 비추어질 외양.

한국에서 계급은 소멸하였다. 그러므로 내가 어디를 가고 무엇을 향유하기로 하든 신분 계급은 고려할 요소가 아니다. 둘째, 무형의 자격 요소로서 지식, 교양의 습득 여부가 그 다음으로 중요한데 적어도 문화 공간에 관중이 막 형성될 무렵 한국인의 서구 문화에 대한 이해도는 소수의 진짜 전문가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도토리 키재기였다고 봐야 할 것이다. 어떤 공간을 독점한 특정 신분이 부재하고, 사회의 전반적인 교양 수준도 높지 않아 누구나 허들을 넘을 수 있다면 남은 고려 사항은 한 가지, 입고 갈 만한 옷은 있느냐는 것 뿐이다. 신분은 타고나기에 극복할 수 없고, 지식 등 무형자산의 결핍은 극복하기 힘든 것인 반면, 복장은 세 가지 중 가장 해결하기 쉽다. 그 문제는 한국의 경우 경제성장이 해결해 준다. 대충 아무 옷이나 사서 깔끔하게만 입으면 된다!


마무리

이 글을 처음 쓰기 시작했던 때와 비교해 거리두기가 상당히 완화되어 공연들이 재개되고 있다. 아마 여전히 좌석 사이를 띄워 앉겠지만 연말쯤에는 완전한 일상으로 돌아가 있지 않을까 싶다.

한 세대 전만 해도 공연을 보고자 해도 건물만 서 있을 뿐 프로그램이 부족했던 시절이 있었고, 생소한 외래 문화에 마음을 여는 데에도 긴 시간이 필요했지만 일단 사람들의 발길이 향하기 시작하자 어느새 일반 대중의 삶 속에 당연한 듯 자리잡았다.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공연 시설을 향한 대중의 발길을 막을 요인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던 현대 한국의 사정 덕분이라는 것이 개인적 결론이다. 입고 갈 옷이 있느냐가 유일한 문제였다는 얼핏 들으면 진지하지 못한 농담같은 결론에 이르게 된 것은 사람의 이동과 교류를 막는 진정 심각한 장벽이 사라진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점에서 농담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긴 한국의 역사에서 일시적인 현상에 그칠 지도 모르지만 전통이 무너진 폐허 위에서 경제와 문화를 다같이 건설하며 정신적으로 평등했던 시대가 낳은 많은 결과 중 하나가 일반대중의 문화접근성 증대였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흐름은 이제 벌써 어느 정도 과거의 장면인 듯 하고 인스타그램에 일부러 비싼 공연 티켓을 우연인 척 인증하는 사진이 점점 늘어나는 걸 보면 보편적 문화 향유의 시대는 이미 지나가 버리는 중인 듯도 하다. 지켜볼 따름이다.



계급과 취향의 문제를 파헤친 스웨덴 영화 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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