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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있었던 것 같은 어떤 일이 날짜를 확인해보면 실제로는 2019년에 일어난 경우가 더러 있다. 기억이 2019년에서 2021년으로 바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내 삶 속에서도 2020년의 존재감이 희미하다는 것을 근래 자주 깨닫고 있다. 시간은 추상적인 개념일 뿐이며 실제로 경험한 사건들의 기억을 통해서만 시간이 기억 속에서 살아 남을 수 있다. 일 년 가까이 가지 못한 곳, 만나지 못한 사람, 하지 못한 것들이 떠오른다. 그런 부재가 삶의 흐름을 끊고 분명히 존재했던 시간을 기억에서 지운다.
그 부재 가운데 내게 크게 다가오는 것을 하나 꼽는다면 연극, 발레 등을 보러 다니던 문화생활의 중단이다. 사람들마다 각자 다른 모습으로 이 시기를 지나가고 있을 텐데 시급한 문제가 쌓여 있는 다른 곳에 비하면 일반인의 문화생활이야 우선순위에서 저 뒤 쯤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보다 시급하고 절박한 일들이 먼저 잘 해결되기를 조용히 기다리면서, 언젠가 다시 사람들로 북적일 그러나 지금은 오랫동안 인적이 줄어 적막해진 극장이라는 저 장소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려 한다.
극장이라는 공간
한국에 공연을 위한 근대적 공간이 언제부터 있었는지를 거슬러올라가면 멀리는 대한제국 시대 원각사를 언급할 수 있겠고, 대도시에 자리하면서 대규모 관중을 모을 수 있는 근대적 공간으로 본격적인 것으로는 오늘날 세종문화회관 자리에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경성부 부민관을 들어야 할 것 같다. 해방 이후 부민관은 이승만의 호를 딴 우남회관 시절 및 전쟁을 거치며 세종문화회관으로 다시 태어난다. 3공화국 시절에는 남산 자락에 새로이 국립극장이 들어섰다.
그러나 공연을 위한 하드웨어 확보와 함께 반드시 뒤따라야 하는 것이 문화를 향유할 계층의 형성인데 여기엔 좀 더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이 나라에 오페라, 발레, 오케스트라 연주 등을 위한 본격적인 공연시절이 들어선 것은 1980년대 서울 서초구 우면산 기슭에 예술의전당을 세우면서부터였다. 3저 호황의 붐을 타고 1000달러대의 국민소득이 단숨에 2000달러대로 뛰어올라간 그 시대부터 일반 시민이 문화생활을 누리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소득, 여가가 갖추어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필요조건일 뿐, 공연장을 일반대중이 친숙하게 여기고 편안하게 드나들 수 있는 충분조건은 되지 못한다. 무엇이 더 필요하였을까?
판데믹이 덥치기 전까지 주요공연마다 사람이 밀려들던 모습은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물리적인 현실이었다. 손에 분명히 잡히는 물리적 현상의 원인을 경제성장에 따른 소득증가, 교육을 통한 예술적 교양의 보급 등과 같은 추상적인 단어의 나열로 답하는 것은 현실 속에서 실제로 작동한 연결고리를 놓치게 할 수 있다.
미리 내가 생각하는 답을 말한다면 주저하던 대중이 공연장으로 갈 수 있도록 해 준 것은 아마도 ‘옷’일 것이다. 아무 옷이 아니라 ‘남 같은’옷, ‘꿀리지 않는’옷. 여기서 옷이란 단어 그대로 옷이기도 하고, 다른 의미를 담고 있는 은유로서의 옷이기도 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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