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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

장화 신은 고양이 2018. 1. 23. 21:46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




6 한낮, 오래 전에 푸른 빛을 띠게 숲은 한층 색이 짙어지고 아침부터 울어대는 뻐꾸기 소리, 매미 소리가 더위 속에서 자장가처럼 들리던 어느 , 어떤 남자 명이 숲으로 이어지는 오솔길 입구에 들어섰다. 

남자는 10년간 교도소에서 복역한 오늘 만기 출소하여 집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짧은 머리, 거칠어진 피부, 불안한 눈빛 무엇보다 시대에 크게 뒤진 유행지난 옷차림이 사람이 여느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집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은 크게 휘어지는 S자로 1킬로미터 가량 되는 거리이다. 왼편으로는 개울이 구불구불 흐르고 오른편은 산자락과 닿아 있다. 중간중간에 가의 커다란 바위, 개울을 가로지르는 징검다리, 물가의 버드나무 따위가 단조로운 풍경에 변화를 주고 있다.


남자에게는 가족이 있다. 10 어느 저녁, 경찰서에서 찾아온 손님 명이 조용히 남자를 문밖으로 불러낼 불안하게 지켜보던 아내가 있었고 그는 당시 임신 중이었다. 복역 태어난 아들은 이제 살이다.


남자는 터벅터벅 천천히 그러나 쉬지 않고 집을 향해 걸음을 뗀다. 옆에 아무도 없는데 그는 누군가에게 말을 건넨다.

여기 바위 기억나? 여름에 더울 우리 둘이 바위에 앉아 발담그고 놀았잖아.”

보이지 않는 말동무는 바로 남자의 기억 속에 10년전 모습으로 남아 있는 젊은 아내의 환영이다. 길고 복역 기간 외로움에 지지 않기 위해 그는 상상의 힘을 빌려 눈앞에 아내를 불러내어 끼니 때마다 함께 식사하고 대화하며 세월을 견뎌온 것이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전혀 나이를 먹지 않은 아내가 남편의 귀갓길에 동행하고 있는 것이다. 


S 길이 처음으로 크게 휘어지는 곳에는 버드나무가 있었다. 

남자가 입을 열었다.

여기서 내가 당신에게 고백했지. 스물 다섯 되던 밝은 밤에.”

이렇게 말하는 그의 얼굴은 행복에 젖어 있었다.

10년이라는 시간에 의해 중간에 단절된 그의 인생이 오솔길을 밟아가며 잃어버린 알았던 과거를 하나씩 하나씩 되찾고 있었고 때마다 얼굴은 잔잔한 행복에 빛났다.

어느 숲이 끝나가는 곳까지 왔을 낡은 벤치가 끝에 있었다.

아이를 가진 당신이 저기에 앉아 쉬곤 했는데...”

길에 들어설 때부터 간혹 미소만 지을 말이 없던 아내가 처음으로 입을 연다.

먼저 집에 들어가서 식사 차려 놓을께.”

말을 마친 아내가 갑자기 남편을 앞지르더니 들판을 가로질러 쪽에 있는 낡은 목조가옥 마당을 가로질러 집안으로 들어갔다. 마치 토슈즈 끝으로 발레리나가 총총히 바닥을 미끄러져 가는 듯한 비현실적인 모습이었다.


문득 남자는 자신이 혼자가 되었음을 알았다. 10년간 가장 친한 , 곁에 있던 늙지 않은 아내는 이제 사라져 버렸다. 대면해야 하는 사람은 10년간 곁에 없던 그간 나이를 먹어 마흔이 부인이었다.


집이 바로 앞에 보이는 거리에서 그의 걸음이 느려진다. 울타리는 세월의 흔적이 무색하게 튼튼하다. 목조 집의 관리 상태도 나쁘지 않다. 아내가 그사이 솜씨 좋은 목수가 되었나.

드디어 문앞에 섰다. 열기만 하면 된다.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한다. 

아내가 보고 믿겠다는 놀라겠지. 달려와 와락 안기겠지. 아들은 처음 보니까 처음에 쭈뼛거리겠지만 아이엄마를 따라 조심스럽게 내곁에 다가올 거야. 그리고... 그래 강아지가 있었어. 아직도 살아있다면 들판 어딘가에서 놀다가 냄새를 맡고 마당을 가로질러 열린 문으로 뛰어들겠지.”


남자가 손잡이를 당기자 문이 열렸고, 삐거덕 소리와 함께 발을 들이밀자마자 개가 멍멍거리며 자신에게 달려와 안기더니 혀로 얼굴을 마구 핥았다. 개가 짖는 소리를 들은 남자 아이가 방문을 열고 나왔는데 누군지 모르는 처음 보는 그것도 초라한 행색의 손님에게 선뜻 다가오지 않았다. 열리는 소리, 짖는 소리, 방문 열리는 소리를 듣고 마지막으로 여자가 주방에서 나왔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를 마주본다. 남자는 세월의 흔적이 지나간 아내를 낯설게 쳐다보더니 그도 잠시 반가움에 눈물이 눈에 차올랐다. 그런 남자를 여자가 계속 쳐다본다. 어느새 부부의 얼굴은 서로가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 되어 같은 표정이 되어버렸다. 남자의 얼굴에서 긴장이 풀려 고인 눈물이 흘러버렸고 눈물이 지나간 얼굴은 두려움인지 당황스러움인지 분간되지 않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잠시 남자는 오던 길을 거꾸로 되밟아 집으로부터 멀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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